프랑스에서는 1850년경 리에보Ambrose Auguste Liebeault(1823~1904)란 의사가 최면요법을 연구하는데 노력하였으며, 후에 난시 의과대학 교수 베론하임Hippolyte Marie Bernheim(1840~1919)도 이에 참가하여 브레이드의 생리설에 대한 이론에 맞서 심리설이라고 할 수 있는 암시설을 수립했다. 1884년부터 1886년에 걸쳐서 출판된 베론하임의 저서 “암시와 그 치료적 응용”은 오늘날에도 고전으로서의 가치를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리에보와 베론하임의 명성은 유럽 여러 나라에 퍼지게 되었고, 많은 의사들이 그들에게 최면을 배우기 위해 낭시를 방문하여 이들은 낭시학파로서 널리 알려졌다.
한편 파리에는 신경병리학자인 샤르코Jean Martin Charcot(1925~1893) 교수를 중심으로 하는 사르페트리엘 학파가 ‘최면수면hypnosis sleep’에 대한 연구를 발표하였다. 각 단계에서 피험자는 서로 다른 유형의 증상을 보인다고 주장하였으며, 최면현상을 일종의 히스테리적인 상태라고 보아 비정상적인 신경활동으로 정의 내렸다(정동하, 2002). 최면수면의 각 단계는 첫째 경직증, 둘째 기면상태, 셋째 몽유병이라고 주장하였다. 샤르코가 1882년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 그의 견해를 발표하자 그동안 최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던 의학계와 과학계, 일반인들에게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되어 최면을 인정하게 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이로써 샤르코는 최면의 역사에 위대한 공헌을 남기게 되었다.
최면에 대한 연구는 프랑스에서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에 까지 퍼지고, 이어서 미국을 거쳐 19세기 말에는 일본과 한국에도 도입되었다. 한국의 최면보급 상황을 보면 해방 전에는 일본 동경에 본부를 둔 제국신비회 한국지회가 있어서 최면강의록을 통해 최면이 한국에 미미하게 알려졌을 뿐이었다. 해방 후에는 1960년 초에 이만용의 “최면술 입문”과 김용락씨가 번역한 트레이시 박사의 저서인 “최면의 신비”가 출판되어 최면에 대한 관심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