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는 최면을 유도하는 것을 수차례 실패했으며, 최면에 걸린 여성 환자가 성애적인 표현을 나타내자 당혹스러웠다. 프로이트의 자서전에는 그가 최면을 포기하게 된 배경이 묘사되어 있다.
“발작적인 통증을 호소하는 한 여성을 치료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녀의 통증의 원인을 찾던 중 그녀가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그때 마침 남자하인이 들어오는 바람에 당혹스러운 사태는 끝낼 수 있었다. 이로 인해 나는 최면을 그만두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 그녀가 나에게 했던 행동의 이유는 내가 뿌리칠 수 없을 만큼 매혹적이라서가 아니라 최면의 신비로운 한 가지 요인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제거하기 위해서 최면을 그만두어야 한다.”
프로이트가 최면을 버린 또 하나의 이유로서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깊이까지 최면유도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얕은 최면상태라도 치료가 가능한 치료기법이 개발되어 있고, 대부분의 경우 누구에게든지 경최면 상태까지는 유도가 가능하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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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1856~1939), 출처: 다음 인물지식백과사전
프로이트가 최면을 물리쳤던 진정한 원인은 당시의 최면유도 기술수준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정신분석이란 새로운 분야를 개척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프로이트가 아니라도 누구나 자기 스스로 새로운 기법을 펴냈을 때에는 자기 것을 키우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따라서 이론의 모체가 된 원래의 기법이라도 배척하기 마련이며 심지어는 비난도 불사할 수도 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론에서 자유연상을 계속하고 있으면 결국에는 얕은 최면상태로 들어가게 된다. 말하자면 프로이트의 자유연상도 실은 최면유도의 한 형식에 불과한 것이다. 프로이트 자신은 강한 암시나 정화법을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몽유상태와 같은 깊은 최면밖에 몰랐던 것이다. 그는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가 일종의 최면상태가 된다고는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1919년 프로이트의 『분석방법의 전환』에 실린 “동료들에게”라는 글 속에서 그가 다시 최면에 대해 관심이 많음을 보이고 있다. 그는 말년에 “분석이라는 순금은 당연히 암시라는 비금속과 합금되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라고 하여 최면을 정신분석에 결합하여 조화를 이룰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고제원, 2008).
최근에는 정신과의사들 중에서도 정신분석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최면기법을 많이 활용하는 경우가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정동하, 2002).